[넷플릭스/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 전편시청소감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인연. 여주인공은 그것을 가벼움이라 칭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질긴 인연, 조카의 탄생을 통해 가슴 한구석에 무엇인가의 큰 울림을 얻는듯해 보였다.
사랑은 결코 필요에 의한 것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을 여주의 어머니는 ‘별주머니’라 칭한다. 누군가와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한번 넘어져도 일어나는 힘. 누군가로 인해 속상하고 힘들더라도 우리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같이 보냈다며 위로하는 힘. 물론 그것만이 다가 아님은 서로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를테면 일상 속에 이미 서로라는 인연이 녹아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먹을 때도 입을 때도 좋은 것을 보았을 때도 심지어 다른 이성을 보면서도 늘 상대를 떠올리며 ‘이 사람은 이럴 때 이렇게 하는데...’ 라며 떠올리는 것.
17년도 드라마라기엔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금수저가 아닌 청춘들이다. 출퇴근시간에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집에서 빚을 갚으며 생을 마감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나 제 한 몸 뉘일 곳이 필요해서 꿈을 좇아서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저기 떠돌기도 하며, 정작 자신은 결혼이 꿈이 되어버린 회사 안에서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연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지나가는 글귀에서 얼핏 읽은 기억이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태어남 자체가 생의 시작인데, 강렬한 트라우마적인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트라우마를 안고서 계속해서 삶에서 고군분투한다.
처음엔 뒤집기 위해,걷기 위해, 잘 먹고 잘 싸는 것까지..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주변의 격려를 통해 성장을 강제받는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태어남을 당했다.’라는 표현을 들은 기억이 난다. 태어난다는 것은 오로지 부모의 선택이라는 전제조건하에서 나온 말 아닐까 싶다. 자식으로서 자신은 이런 세상 속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 말은 ‘현시대 사람들은 아주 큰 고통을 겪고 있다.’라고 해석되었다.
지금이 얼마나 고통스럽거나 절망스러우면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선택권'에 대해 이야기할까?
그렇게 일상을 담담히 살아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나름대로 찾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축구보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하며 맥주 한 캔 마시는 저녁. 그것을 낙으로 사는 모습. 이것마저도 취업준비를 하느라, 혹은 육아나 생계 집안일등 가정을 책임지느라 힘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안에서는 그것이 낙으로 나왔었다. 무거운 현실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나 다름없이 보였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를 보다보면 일터에서 가정에서 연인관계 속에서 가족 안에서 직업 속에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다. 가령, 여자주인공은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집에서 태어나 남동생과 거주하던 공간을 본인의 돈으로 꾸려갔지만, 결론적으로 그 집은 결혼한 동생의 소유가 되었다. ‘그 상황 속에 내가 있었다면?’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많다. 대기업에 입사한 뒤로 일상적인 성희롱을 당하며 커리어를 유지 해나 갈 것인지 혹은 새로운 선택을 할 것인지, 누군가와의 불쾌한 경험을 참고 덮고 넘어갈 것인지, 스스로의 관심분야 쪽으로 커리어를 바꾸는 쪽으로 선택을 할지, 표현하는 것을 서툴러하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좀 더 해볼지 새로운 인연을 선택할 것인지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인생은 선택이란 말이 있다. 되도록이면 지혜로운 선택을 위해 많은 현실의 과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 씁쓸하고 달콤한 드라마를 한 번쯤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