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자로 만든 이야기
가지에 어느덧 푸릇한 기운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덧 무성해져 꽤 짙은 그늘을 만들어내어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만으로는 여러 식구들을 먹여살리기에 벅차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다른 일도 없을까라며 옆동네 사또에게 말을 해보아도 허허실실 웃기만 할 뿐이다. "자네는 농을 잘하는구만!" 이라며 노비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라일락 향기만 남은 오후의 어느날 김진사댁이 방문했다. "마분지가 있을까요?" '저 양반은 왜 우리집에 와서 그런 물건을 찾는지 영문을 알 수 없구만..' 이라는 생각을 잠시한 뒤 "바쁘니 다른 댁에도 가보슈." 라고 외쳤다. "사람이 참 정없구만." 이라며 한참을 씩씩대며 마당을 돌아다니더니 자리를 떴다. 아들놈은 서당에 잘 다녀온건지 대뜸 와서는 "저도 과거를 잘 볼 수 있겠죠?" 라고 해온다. 자식 하나는 잘 둔 것인지 나와는 다르게 영 똑바르다. 오시쯤 지나니 차를 끓어온 영실이네가 "이것 몸에 좋으니 아드님과 드셔보셔요." 라며 권한다. 몇 모금을 마신 뒤 "카악~~퉤!" 라며 온갖 찌뿌리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것이 몸에 좋으면 얼마나 좋다고 가져온것이더냐?" "맛은 이래도 원기회복에 좋다하옵니다. 원래 입에 쓴 것이 몸에는 약이라하옵니다. 나머지 약재들은 여기 두고가겠습니다." 라 말한 뒤 총총 사라진다. 파란 봉투에 소복히도 쌓인 약재들은 가지런히 마룻바닥에 모셔져 있었다. "하~ 참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라곤..."이라고 중얼거리다 며칠 뒤에 있을 약조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