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크루엘라에게 해주고 싶은 말

Bogotipo 2024. 10. 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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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 속 크루엘라.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73532
https://images.app.goo.gl/YM8HjbcJEBAcvgx76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 좌절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성숙하게 극복을 하는 이가 있고,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자신과 타인에게 학대를 하는 이가 있습니다.

나이를 막론하고 전자를 성숙한 어른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 자신이 아무리 사회적 지위, 따르는 이가 많아도 껍데기라는 것을 보통의 사람은 압니다.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닥친 불편감을 견디는 것이며, 동시에 편안함을 추구하며 좋은 것을 나누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처를 이해하려들지도 않고 외면하는 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불쌍하게 지내왔는지만 보며 남의 생각은 어떤지 알려들지 않으며 자신만의 판단잣대로 남에게 나쁘게 대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또 다른 이기심이 아닐까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사회전반에 퍼져있습니다.

 

삶이라는 게 본래 모순적인 것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뭐 때문에 상처받았는지 정확히 이해하려 들지 않고(그 과정이 어렵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나와 타인에게 좋은지 알려들지 않고

겉으로는 아닌 척, 외면하기 바쁜 게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실은 누군가에게 한 없는 사랑을 받고 싶은 여린 인간이며

혹여는 그러한 사랑은 베풀면서 기쁨을 느끼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한 점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부정하며 남을 까내리며 조롱하며 겉으로 가면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 상대방을 내리까면 자신이 더 높아진다는 착각을 하면서 인생을 소비하게 되죠.

자신조차 속이며 고통을 외면하기에 계속 같은 문제에 머물며 미숙하게 표현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어린아이가 그 속에 있습니다.

 

꼭 약해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단 악해서 생기는 질환으로 변종하죠.

그렇게 절여지다 보면 이젠 생각도 거치지 않게 되며 자극과 반응에만 집착하고 몰두하게 됩니다.

사람이란 본분을 마치 잊은 이처럼 그 모습은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여기며 되려 타인의 부정적인 관심을 받는 걸 즐기는 형태로 표현되죠.

 

안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좋은 점을 보려 노력하는 것은 습관이 됩니다.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이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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